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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이익상목사의 유물과 함께보는 성경과 역사

성경과 역사 1

파피루스 암헤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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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파피루스 암헤르스트 (Papyrus Amherst) 민중 이집트어체로 쓰여진 이 파피루스 조각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해독이 되었고, 시편 20편과 매우 유사하다. 파피루스에서 빨간색 처리한 부분은 민중 이집트어체로 ‘여호와’, 파란색으로 처리한 부분은 ‘주님’을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에 네덜란드 사람 암헤르스트가 파피루스 (Papyrus) 몇 개를 골동품 수집용으로 사들였습니다. 민중 이집트어체로 쓰여진 이 파피루스 조각을 어떻게 읽는 줄도 몰랐습니다. 학자들도 이집트 사람들이 사용하던 민중 언어 체계를 당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때입니다. 그러다가 구입한 지 몇 년 뒤, 암헤르스트가 죽고 그 딸이 자기 몫으로 남겨진 골동품들을 하나 둘 내다 팔던 중, 파피루스 암헤르스트 (Papyrus Amherst) 라고 불리는 이 파피루스도 팔려나갔습니다. 파피루스가 세상에 나온지 거의 100년이 되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해독이 되었는데요. 그 내용이 시편 20편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 다음날 곧바로 고고학 도서관에 가서 이 파피루스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도대체 이 시편을 파피루스에 써가며 노래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이 시편을 노래 했는지가 너무 궁금했거든요.

이 시편을 파피루스에 기록하기 100여 년 전 유다가 멸망했습니다. 유다가 패망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벨론과 이집트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자 하는 방도를 찾아보겠노라고, 눈에 보이는 강대국과 권력을 쫓아 다녔습니다. 바벨론의 왕에게 유다를 의탁해야한다는 사람들과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유다를 의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싸웠습니다. 두 제국의 군사력과 정치력을 비교하며, 더 영향력 있고, 더 강한 나라 편에 서야겠기에 자기들의 정치 분석이 더 정확하노라 논쟁을 했습니다.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매수해 거짓 예언을 하게 했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라고 배척했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의해 유다 왕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부는 포로로 끌려갔고, 더러는 자유를 찾아 바빌론으로, 그리고 이집트로 이주했습니다.

이집트로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 이집트 나일강 상류의 작은 섬 ‘엘레판틴’이라는 곳에서 살던 작은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이 시편을 노래했던 사람들입니다. 엘레판틴 섬에서 타향살이를 해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엘레판틴 섬에서 살았던 유다 사람들의 사정을 살펴보면, 그리 감사할 만한 것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길이가 2km, 너비가 400m밖에 안 되는 그 작은 섬에서 농사를 짓는다손 치더라도 그리 넉넉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나마 이집트의 강력한 적이었던 누비아 사람들을 대치하고 있는 군사 기지의 역할도 겸했던 섬이었던지라, 늘 긴장 속에서 살아야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는 작은 성전을 만든 것입니다.(기원전 6세기, 525BCE) 그리고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시편 20편을 말이지요. 고난을 맞이하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살 궁리를 하느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던가, 그 고난을 피할 수 있는 방도를 찾게 마련입니다. 유다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방법을 의지했던 유다 사람들이 얻은 것은 지난한 피난 생활일 뿐이었습니다.

낯선 땅, 이집트에 정착하게 된 고난의 때에 유다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다윗이 노래하였던 이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우리 여호와 이름을 자랑한다!” 이것이 고난이 바꿔놓은 유다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집트의 팍팍한 삶과 나라 잃은 민족의 비극 속에서 유다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의 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걸어왔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건대, 내가 의지해야할 바로 하나가 있다면,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과 노래. 유다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풍요로운 문화와 물질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교인들조차도 풍요는 복이고, 고난은 재앙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처럼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그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삶에 못질을 합니다. 그 사람이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의지할 것 없는 광야,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고난의 무게에 짓눌려 죽게 놔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은혜와 유익을 주십니다. 고난 때문에 우리가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을 더 잘보고, 하나님만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고난이 유다 백성을 바꾼 것처럼, 주님께서는 지금 고난을 겪고 있는 여러분도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를 더 깊이 만나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여러분과 저를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만지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저와 함께 여전히 고난의 길을 걷고 계신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성지순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