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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참된 안식을 얻을 때

2021년 2월 14일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마가복음 3장 5절)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과 이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기록합니다. 본문 이전의 내용마가복음 2장을 살펴보면, 이미 예수님은 안식일에 제자들과 이삭을 자른 것으로 한차례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자 다른 것으로 트집을 잡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해주는 것을 고발 사유로 삼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악독한 마음을 아셨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4절)라고 물으십니다. “참된 안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율법에 정통하다고 말하며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말하면서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들은 율법이라는 규정과 틀 안에 갇혀 ‘안식일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라는 본질적인 물음은 제쳐두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옥죄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참된 안식’의 의미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6일 간의 노동으로부터 참된 쉼을 얻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새로운 영적인 활력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참뜻을 잃어버리고, 인간을 제도 속에 가두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심으로써 율법과 위선에 가득 찬 바리새인들에게 참된 안식의 의미를 가르쳐주십니다. 본문을 통해 참된 안식을 얻게 될 때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지 살펴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마가복음 3장 1~6절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되고 거룩하게 하신 날로서, 우리가 안식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참된 쉼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주신 날입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참된 뜻을 망각한 채 자신들의 생각과 권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날로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이 지키기 어려운 규정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따르지 못하면 죄인이라고 정죄하며 낙인을 찍었습니다. 몸은 쉬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마음은 악하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분주하고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율법에 메여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치유하며, 사랑으로 품는 날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규정을 만들고 다른 사람은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며 영광 돌리는 날입니다. 즉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 중심의 생각’을 갖는 것이야말로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안식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섬기고 봉사할 때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섬김과 헌신의 삶,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삶 속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 치유와 회복을 경험합니다.

본문 1절은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라고 기록합니다. 왜 회당의 많은 사람들 중 특별히 한쪽 손 마른 사람을 지목하고 있을까요? 그 사람은 그저 우연히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예배 드리기 위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장애가 있거나 후천적으로 질병을 얻으면, 그것이 부모나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이나 병자들이 회당에 오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본문의 손 마른 사람은 회당에 앉아있었을까요? 아마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의도적으로 그를 앉혀놓았던 것 같습니다. 안식일에 이삭 자르는 것을 허용하신 예수님이 과연 손 마른 사람을 보고 어떻게 하실지 살펴보려는 의도입니다.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일종의 덫을 놓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예상대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에게는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상황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은 오직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회당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사람을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참된 안식,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자에게는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질병과 육체적인 불편을 넘어서서 마음과 영혼의 문제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참된 안식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얻게 됩니다.

셋째,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본문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5절)라고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칭했던 병자를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삼고자 했고, 예수님은 그 악하고 무자비한 마음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해주심으로 참된 안식의 의미를 되새겨주십니다.

손 마른 사람은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사람들을 깨우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치유받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희망을 둘 만한 곳은 없고, 바리새인들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와야 했던 사람이 이제는 병과 사람들로부터도 자유해지고 자신의 의지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안식일이기에 아무도 일하지 않던 날, 손 마른 사람은 태어나서 가장 많이 움직인 날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안식이 된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해볼 수 있다는 기대, 미래에 대한 큰 비전을 갖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새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를 참된 안식, 곧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를 불러옵니다. 세상의 힘과 가치를 따라가야 하는 연약한 삶에서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의 삶도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으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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