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현장
“예수 믿는게 최고요”
2021년 1월 31일
목회현장
- 전선옥 목사(광림사랑의집)
1992년 사할린 동포 영주 귀국의 첫 발걸음은 ‘광림사랑의집’에서 출발합니다. 그 역사의 마지막 주인공이셨던 송형섭 어르신이 한파의 소식이 가득한 2021년 1월 8일, 따뜻한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16세와 11세의 두 형제가 부모없이 도착한 사할린의 추위는 얼마나 춥고 지독했을지요. 일어와 소련어도 배워야 합니다. 추위와 맞서며 살기 위해 일도 배워야 합니다. 자신보다 더 어린 동생을 위해 얼어붙은 땅에서 벌목공으로 땀흘렸을 때, 눈물도 함께 흘렀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일본 요도바시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들이 ‘사랑의집’을 찾아 어르신들 앞에 일제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수십년을 쓰지 않았던 일어인데,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운 언어는 그 자리에 계셨던 우리 어르신들의 자세마저 차렷 자세로 곧추 세웠습니다.
송형섭 어르신이 일본어와 러시아 말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이름은 송형섭이오”라고 하시며,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를 부르셨습니다. “내가 지금껏 살아보니 예수 믿는게 최고요”라고 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일본 목사님께 보여주었습니다. 그 자리를 지켰던 일본 성도님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광림사랑의집’에 터를 잡고 시작한 믿음의 삶입니다. 나라의 험난한 시절, 외로움과 추위와 싸우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어르신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니 나라도 해결하지 못한 용서의 문제도 예수의 이름 앞에 다 녹을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장례예배에서는 어르신이 즐겨 부르시던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를 찬송했습니다. 송형섭 어르신에게 이 찬송의 가사들은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라고 신앙의 고백이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며,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찬송의 기쁨과 은혜가 우리의 삶에서 깊이 울려퍼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