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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유물과 함께보는 성경과 역사

2021년 2월 14일

31.회당

이익상 목사(텔아비브 대학교 박사과정)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기독교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회당으로 갑니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제의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산당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성전이 무너지기 이전까지(70CE)는 성전에서 제의를 드렸지요. 그러나 성전이 무너지고 이후로는 유대교인들의 신앙의 중심지가 회당으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성전과 회당이 공존했거든요. 그래서 회당이라는 제도가 언제부터 생겨났고 왜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 역할이 무엇인지가 의문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과 랍비들이 회당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였지만 딱히 통일된 견해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설명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모세가 회당의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필로, 요세푸스). 회당의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수해 준 첫 번째 사람 모세로부터 회당의 유래를 찾고 싶었던 것이지요.
두 번째, 바벨론 포로기 중에 회당 제도가 생겨났다는 견해입니다(Sionius, Mene, Friedländer).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간 유대인들이나 유다 땅에서 쫓겨나 지중해 주변 지역으로 떠난 유다 사람들은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성전 기능의 일부인 기도와 율법의 전수를 대신하는 회당의 제도가 생겨났고 유다 사람들이 흩어진 곳곳에서 회당으로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가 1970년대까지 회당 제도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었습니다.
세 번째, 요시아 시대(640~609BCE) 이후 회당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입니다(Morgenstern, Weingreen, Löw) 요시아가 단행한 종교개혁의 특징은 제의의 중앙화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제사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라는 것이지요. 요시아 이전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각 지역의 산당에서 제의를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폐해가 커지면서 요시아가 제의를 예루살렘으로 집중시킨 거지요. 그러나 그에 대한 약점도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제의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신앙 교육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인데 안식일 마다 예루살렘에 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교육의 장이 산당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금지되면 신앙의 두께가 얇아지게 될 우려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만든 제도가 회당 제도이며 이 회당 제도의 뿌리는 성문 어귀에서 모이던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세 번째의 견해와 그 논지의 흐름은 비슷하지만 회당 제도의 시작을 알리는 시대를 요시아의 시대가 아니라 하스모니안 왕조 시대(ca.140~37BCE)로 보는 것입니다(Hengel).
다섯 번째, 가장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론이기는 합니다만,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서 무너진 뒤(70CE)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 사이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Kee, Cohen).

수많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주장’은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바침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회당을 연구하는 연구가들과 고고학자들이 유대교 회당의 흔적을 찾기 위한 많은 연구들을 했습니다. 이론가들은 회당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다른 기능들에 주목했습니다.

회당은 (1)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제의적 기능, (2)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율법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재판정의 기능, (3) 유대인 공동체가 공동으로 어떤 결의를 할 때 회의를 하는 장소로의 기능, (4) 특별한 안건을 가진 회의라 부를 수는 없지만,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하는 모임의 장소로서의 기능, (5) 먼 지역의 유대인이 자기 지역으로 왔을 때, 그들을 위해서 숙박을 제공하거나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런 기능들을 말하고 있는 고대의 문서들을 찾아 연구하면서 회당의 역사를 추적하였고, 고고학자들은 오래된 유대인 거주 지역들을 발굴하면서 회당의 흔적들을 찾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고고학 유물이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회당은 아마도 기원전 3세기에 쉐디아(Schedia)와 카이로(Cairo)에 세워진 기도처(προσευχή 프로슈케)일 것입니다. ‘프로슈케’는 유대인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입니다.
‘수나고게’ συναγωγή 라는 말이 ‘회당’이라는 용어로 완전 고착되기 이전에 유대인들이 기도와 율법의 연구, 그리고 일반적인 공동체의 만남과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위해서 함께 회의를 하기 위해서 모이는 장소를 지역에 따라서 그리고 그 주된 역할에 따라서 다양하게 불렀습니다. 그 이름은 ‘프로슈케’(기도하는 곳), ‘ 하기오이 토포이 ’ Άγιοι Τόποι (거룩한 곳), ‘카할’ קהל (모임), 그리고 ‘베트 (하)크네셋’ בית (ה) כנסת 이었습니다(때로는 로마의 영향을 받아서 ‘콜레기움’ Collegium 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집트 지역에서는 유대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모임을 갖는 장소를 ‘프로슈케’라 불렀는데, 기원전 3세기의 회당(프로슈케)을 건설한 내용의 비문이 발굴 됨으로 회당의 역사를 증명하는 고고학 유물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서는 라트룬(Latrun)과 모디인(Modi’in) 지역에서 기원전 2세기의 회당을 발굴하였습니다.
문서 고고학과 현장 고고학의 도움으로 회당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회당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을 모았습니다.
“페르시아 시대 이후 성경 읽기가 성전을 벗어나 장소와 절기의 제약없이 자유롭게 가능해진 이후로 회당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유대아(Judea) 지역과 디아스포라 모두에 있었으며, 건물의 양식이나 구조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형식적으로 자유로웠다. 성전과 회당이 공존하던 시기에 성전은 주로 제의의 기능을 그리고 회당은 율법 연구와 규칙적인 모임과 기도의 장소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다가 성전 멸망 이후에는 회당이 유대교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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