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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선도 감독의 아흔 인생과 목회신학 이야기 - '장천울림'

2021년 8월 29일

12 - 김정운 교수

정리: 백명순 기자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김정운 교수는 <목사 김선도1> ‘목사의 아들로 산다는 것’이라는 글로 아버지인 김선도 감독님을 회고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한번 중요하다 여기시면 오직 그것만 생각하신다. 해결될 때까지 온 신경을 그 일에만 집중하신다. 이 집중력이 오늘날의 아버지를 가능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 한다”고 말한다. 김정운 교수는 김선도 감독님의 둘째아들이다.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이자 화가이다. 지금은 여수 남쪽 섬에 살면서 그림 그리며 글을 쓴다. 아래는 김정운 교수의 글 요약본이다.

‘목사의 아들로 산다는 것’
갑자기 나를 ‘목사 아들’로 불렀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대전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가 대전 공군기술단의 군목으로 일하게 되셨기 때문이다. 대전에서의 생활은 행복했다. 그곳에서 나는 ‘목사 아들’이 아니었다. 당시 아버지는 내게 ‘목사’라기보다는 ‘군인’이셨기 때문이다. 그 이후 아버지가 중구 쌍림동 광림교회로 부임하시면서부터 나는 ‘목사 아들’이 되었다. 내 인생의 괴로움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형교회 중 하나인 광림교회 담임목사 둘째 아들로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내가 ‘누구의 아들’임이 밝혀지면 다들 다시 날 쳐다봤다. 그들의 그 ‘흥미로운 표정’을 난 매일같이 겪어야 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 책에 내 글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들로는 광림교회 교인들은 물론 목회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이야기가 자녀를 둔 목회자들에게는 충분히 참조할만한 것이 되리라 생각된다. ‘목사 아들’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나처럼 고통스럽게 살아왔고, 그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버지 김선도 목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김선도 목사의 아들로 살아온 내 이야기’란 거다.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웠다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은 ‘낚시’로부터 시작된다. ‘사람 낚는 어부’에 관한 신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고기 잡는 낚시를 젊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어릴 적 대전에 살던 시절이다. 위암에 걸리신 할아버지가 대전 집에 오셨다. 음식을 전혀 드실 수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는 어죽을 끓여야 한다며 낚싯대를 들고 집 위쪽에 저수지로 가셨다. 형과 나도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낚시를, 형과 나는 저수지 위쪽 냇물에서 물놀이를 했다. 아버지는 금방 엄청나게 큰 붕어와 몇 마리의 고기를 더 잡으셨고 어죽을 끓이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할아버지는 무척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며칠 뒤 돌아가셨다. 대전에서의 삶은 가난했지만, 내겐 행복한 기억들이 남아있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난 그때 ‘목사 아들’이 아닌 ‘군인 아들’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던 거다.

서재가 있는 인생이 멋지다는 것을 배웠다
쌍림동 광림교회로 부임하시고 목사관에 ‘아버지의 서재’가 생긴 것은 참 좋았다. 목사관 이층에 있는 서재는 내겐 천국과도 같았다. 난 그런 아버지의 서재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놀았다. 책상에 앉아 설교 준비를 하시는 아버지를 흉내 내며 책을 읽었다. 벽 한쪽에는 영어 원서가 가득했다. 책장의 한편에는 외국어 책이 가득해야 폼 난다는 것도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책을 즐겨 읽는 어린 내게 아버지는 수십 권의 ‘세계문학전집’을 사주셨다. 이때부터 내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생겼다. 소설책을 읽을 때는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공부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립하는데 꽤 좋은 방법이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관심에 따라 책을 읽어 가며,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그때의 산만한 독서 습관이 갖는 효과를 확인했다. 동시에 여러 저자의 논문이나 책을 펴놓고, 비교해 가며 읽으면 각 저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데 외국어가 필요함을 배웠다
내가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를 그만 둘 수 있었던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있는 줄 안다. 이 맥락에서 내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광림교회의 재산은 우리가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모두 교단에 속해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내 삶이 광림교회와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엮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부모님은 대학시절 내 몫으로 교회에서 지급되는 학비를 다른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돌려 버리셨다. 난 독일에서 13년간 유학생활 내내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었다. 이런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다들 ‘광림교회 목사 아들’이라고 하면 대단한 꽃가마라도 탄 줄 알아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대학을 마치고 독일에서 유학하겠다고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내 삶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유야 어떻든 간에 독일유학은 내 나머지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선택이었다. 독일어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일본어도 한다. 앞서 말한 내가 ‘믿는 구석’이란 바로 이 언어능력을 이야기하는 거다.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할 수 있는 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영어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생산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콘텐츠 생산 능력을 믿고 나는 교수를 그만뒀다. 번역만 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 이란 생각에서다. 섬에서의 폼 나는 지금의 삶을 누리는데 결정적인 무기는 외국어이다. 이 외국어의 필요성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아버지의 설교가 다른 목사님들과 달랐던 이유는 설교 준비를 위한 자료의 언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 독일어, 일본어로 인터넷 자료를 찾아 비교하듯이 아버지도 일본어책, 영어책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읽으셨다.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시지만, 설교의 예화나 논리는 특별하다. 참고 문헌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를 만듣 ‘아버지 흉내’
‘목사 아들’로 살면서 나는 ‘목사 아버지’와 한시도 쉬지 않고 정신적으로 부딪혔다. 60세 가까이가 되니,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이 ‘아버지 흉내’를 통해 가능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내가 아버지를 결코 닮지 못한 것이 있다. ‘자기절제’(self-discipline)이다. 아버지는 철저하신 분이다. 그 연세에도 여전히 새벽기도 시간을 철저히 지키신다. 아버지는 허투루 시간 보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항상 손에 책을 잡고 계셔야 마음이 편하신 듯하다. 어딜 가든 책가방을 들고 가신다. 그 안에는 언제나 성경책과 영어책, 그리고 일본어책이 들어 있다. 잠시라도 빈 시간이 나면 책을 꺼내 읽으신다. 돈과 관련해서는 말도 못하게 철저하다. 책을 사는 것 이외에 아버지가 스스로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돈의 용도는 딱 세 가지였다. 헌금하고, 남을 돕고, 그리고 설교준비를 위해 책을 사는 것이다. 이토록 철저한 아버지의 ‘자기절제’, ‘자기훈련’의 모습을 보고 자랐지만, 이 부분 만큼은 아버지의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아버지와 나
여러 날에 걸쳐 아버지에 관해 쓰면서 아버지와 나의 관계, 그리고 ‘목사 아들’로서의 내 삶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떨쳐버리고 싶었던 ‘목사 아들’의 삶이지만, ‘아버지의 아들’이었기에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에 몇 번이나 울컥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난 아버지의 그림자와 평생 투쟁했다. 그 투쟁만으로도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내 아버지는 정말 엄청난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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