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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네가 어디 있느냐”

2022년 5월 29일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창세기 3장 9절)

아담은 인간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첫 번째 특성은 생명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간은 흙으로부터 생명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명적 존재란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두 번째 특성은 책임적 존재입니다.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고 사랑하며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다스린다’는 통치와 지배의 개념이 아니라 자유와 특권에 대한 책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세상 만물에 대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특성은 죄에 노출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 (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르심은 결코 정죄를 하기 위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또한 죄를 들추고자 부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주의 음성을 듣고 돌아와 회개하기를 촉구하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이 곧 은총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러주시는 하나님, 기회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삶의 자리에 있는 우리를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인간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새로운 기회를 얻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창세기 3장 3-9절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은총의 기회를 허락하시기 위한 물음입니다.

부끄러움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아담이 숨어 있는 장소를 물으신 것이 아니라 아담의 상태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즉 “네 영혼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 탐욕의 자리에 있느냐? 하나님 말씀의 자리에 있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이 물음은 단순히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담 스스로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신앙적으로 어떤 자리에 있는지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물음에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절)라고 대답합니다. 아담은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왜 두려운지는 몰랐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지만 왜 두려운지는 잘 모릅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즉 죄로 인해 하나님의 관계가 잘못 되었을 때 인간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느낀다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관계의 단절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부르심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죄를 들추시고 정죄하고, 벌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피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우리의 삶에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정직성을 요구하시는 물음입니다.

하나님의 물음은 언제나 정직성을 요구하시지만, 인간은 죄 앞에서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담도 자신의 죄에 대해 하와가 선악과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때문에 선악과를 먹게 되었다”(12절)고 말합니다. 이는 무책임하고 정직하지 못하게 자신의 죄를 남의 탓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곧 그 여자를 주신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면 정직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결국 하나님을 탓하는 무책임하고 회피하는 존재, 변명의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물음은 우리의 무책임함과 부정직함을 깨우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즉 “무엇으로 인해 두려워하느냐?”라는 물음 앞에서 우리의 대답은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때문에”가 되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주님, 당신을 알기 위해 제 자신을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13세기 도미니크회 수사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먼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책임함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에 앞서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물음 앞에서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정직함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정직은 용서를 받는 가장 빠른 길이며, 두려움을 몰아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건강한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되어 나의 삶을 주께 드리고 주가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빛 가운데로 부르시는 초청의 물음입니다.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물음은 빛 가운데로 부르시는 초청의 말씀이자 아담에 대한 관심이며,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숨어 살 수밖에 없는 죄인을 다시 밝은 곳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추한 부분을 숨기고,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죄를 저지르면 더 죄악 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또 다른 죄로 우리의 삶을 끌고 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닌, 죄와 단절되기를 원하십니다. 죄와 단절되는 방법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부끄러운 부분이 드러나게 됩니다. 부끄러운 부분이 드러나는 것은 잠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며 부끄러움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빛 가운데로 나아가면 근원적인 욕망과 죄악 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뿐만 아니라 부족하고 무책임한 모습도 드러납니다. 이렇게 추한 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부끄러움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부끄러운 부분을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리시고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을 불러내십니다. 물론 그들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라버리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무화과나무 잎 대신,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어 그들의 부끄러움을 오히려 더 견고하게 가려주십니다. 이는 더 이상 부끄러움으로 인해 숨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 가운데로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가 죄로 인해 숨어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보십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나의 죄악을 숨기기 위해 어두움 가운데 숨어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모든 죄악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들, 실패와 비참함의 모습들을 주님의 강한 빛 앞에 내려놓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빛 가운데로 나아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거룩하시는 주님을 삶에서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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