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현장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2022년 7월 31일
아펜젤러 선교사(8)
권순정 목사(목회선교지원실)
▲ 아펜젤러 선교사가 탑승한 구마가와마루(The Kumagawa Maru) 증기선
1885년 27세의 나이에 조선의 첫 선교사로 파송된 아펜젤러 목사(H. G. Appenzeller)는 목회자, 교육자, 출판사업가, 번역가 등 수많은 일들을 감당했으며, 조선의 복음화와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02년 6월 11일 전북 군산시 어청도 앞 바다에서 일어난 선박사고로 인해 44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일등석에 있던 아펜젤러 선교사는 삼등석에 있던 그의 조사인 조한규와 한 조선인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성서번역을 위해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순직했다는 것입니다.
아펜젤러는 언어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 고향에서는 번역가로 소개될 만큼 여러 언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그런 능력으로 한국어를 빨리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 성경번역을 위해 온 정열을 쏟던 그는 성서번역자회의 ‘신약젼서’의 수정과 보완 작업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에서 배를 타고 목포로 가던 중 다른 선박과 충돌해 사고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레이놀즈 선교사가 목포에 있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번역작업을 하기 위해서 목포로 행했던 것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여러 연합기관에서 봉사했는데 그는 직책이나 지위를 생각하기보다는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그는 다른 위원들이 번역하지 못한 부분까지 맡아서 번역했으며 성서번역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찾아갔습니다.
그 결과, 아펜젤러는 1890년 3월 <누가복음젼>, <보라달로마인셔> 3,000부씩을 삼문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보라달로마인셔>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튼이 로스의 로마서를 수정한 것입니다. (‘보라’는 ‘바울’의 중국식 번역)
1892년 1월 20일 아펜젤러 번역 <마태복음젼>이 임시역본으로 발행되었고, 1900년에는 신약전서 전체의 번역이 완료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아펜젤러가 번역을 한 본문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고린도전·후서>입니다.
1900년 5월 5일 성서공회 주일, 아펜젤러는 정동교회에서 완성된 신약전서를 손에 들고 감격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비록 그가 한국어 성서번역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헌신으로 인해 한국어 성서번역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존스 선교사가 쓴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1주기 추도사의 일부 입니다.
“그는 교회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주님의 무한한 영광 속에서 살았으며 매순간 그의 위대한 지도자에게 눈을 돌릴 때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앞장서옵소서, 제가 따르겠나이다. 진리와 충성으로 최후의 순간까지 따르겠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펜젤러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지만 그의 무덤은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이 되었으며, 그는 땅에 묻힌 것이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과 동료 선교사들의 마음에 묻혔습니다. 올해는 그의 순직 12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