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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새 사람을 입은 자로 살라

2023년 1월 29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오늘 본문은 사울이 회심하여 바울이 되는 드라마틱한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8장 3절을 보면 이전의 바울은 본래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내면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을 향해 가다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가 예수님께서 바울의 심령을 만지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만지시면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이 질그릇과 같은 볼품없는 인생일지라도 우리 안에 주님께서 계시면 보배와 같은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된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무엇이 담겨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사도 바울이 품었던 주님이 계십니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삶이 변화될 뿐만 아니라 더욱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사도행전 9:10~19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주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사울의 발걸음은 다메섹이라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다메섹으로 피신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그의 여정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가는 그 길에서 예수님은 빛으로 임하시어 사울을 부르시고, 그를 만나주십니다. 이는 사울의 가치관과 신앙과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살기등등했던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자신감과 확신에 찼던 그의 발걸음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박해를 위해 다메섹을 선택했지만, 이제 다메섹은 그가 변화되고 훈련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가 앞을 볼 수 없어 사람들의 손에 이끌리어 다메섹으로 갔을 때, 이미 주님께서는 그에게 도움을 줄 사람과 그가 행할 모든 일들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부르시어 환상 중에 사울을 소개시켜 주시고 그가 할 일들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사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나니아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15절)이라고 말씀하시며, 빨리 사울에게 갈 것을 재촉하십니다. 아나니아는 즉시 사울에게 가서 그에게 안수하고 형제로 맞아들이며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의 핍박자에서 형제로, 분노에 차있던 사람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결코 예수님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강권적인 부르심 앞에서 그는 완전하게 변화되었고, 온전히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의지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늘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신뢰하는 삶

판단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 또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의 아나니아는 신실한 주님의 제자로 사울이 변화되어 사도 바울이 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사울이 결코 그리스도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매우 포악하고 잔인하며 위험한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자신의 정보보다 예수님의 계획과 명령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의 주님의 말씀을 향한 신뢰와 순종이 없었다면 과연 사도 바울이 그토록 쓰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아나니아는 한 사람을 살릴 뿐만 아니라 그 한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이 구원받도록 한 인물입니다. 우리에게도 아나니아와 같은 신뢰와 순종이 있습니까?
훗날 사도 바울은 아나니아에 대해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행 22:12)이라고 증거합니다. 그가 경건한 사람으로 칭찬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아나니아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전적으로 신뢰하며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내 생각, 내 방식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를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받은 은혜를 증거하는 삶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던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과 만남의 체험, 아나니아의 기도와 돌봄을 통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 새로운 믿음의 시작, 새로운 구원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새롭게 시작된 인생, 그 인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새롭게 해석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데, 먼저 과거의 상처, 부족함, 실패 등 부정적인 기억마저도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더 나아가 불투명한 미래 가운데 불안했던 삶까지도 소망과 확신 가운데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증거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다 보면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택함 받은 그릇’으로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더욱 풍성한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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