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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

2023년 2월 26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본문 말씀을 읽다보면 어머니와 같이 성도들을 챙기는 바울의 따뜻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거짓교사들의 미혹 앞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성도들과 또 여러 가지 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성도들, 그리고 세상에서 신앙의 문제와 죄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그들을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생각할 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것도 아니고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자신을 사도라 하고, 그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었던 것인가? 무엇이 그를 그렇게 움직였는가?’ 그는 어떻게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요?
바울뿐만 아니라 많은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이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내놓았습니다. 또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생명을 걸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많은 선교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읽다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고린도후서 12:1~21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깊은 영적 체험과 말씀의 균형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체험 이후에도 깊은 영적인 체험이 있었습니다. 주의 환상과 계시를 보게 되고, 낙원에 올라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바울의 체험은 14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의 감동이 바울을 지금까지 달려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비한 현상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14년 전의 체험을 다른 서신에서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이 일 외에도 많은 체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삶 속에서 발견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즉 매일매일 깊은 영적 체험을 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반면 영적인 체험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짓교사들은 신비한 체험이 전부인 것처럼 떠들어댔습니다. 큰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득불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영적 체험은 늘 말씀과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신앙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또는 신비한 일을 만나게 될 때, 늘 말씀에 빗대어 신앙의 균형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육체의 가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마음

바울은 영적인 체험에 이어 육체의 가시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것,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육체의 가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육체의 가시로 인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육체의 가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 즉 연약함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있습니다. 평면의 그림인데 입체적인 느낌이 납니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렘브란트가 사시였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문제가 되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화가 고흐도 정신장애로 인해 통 속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고뇌, 정신적인 어려움 가운데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림 속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지금은 현존하는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제가 있었다면 문제로 끝났지만, 이들에게 문제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꼭 육체적인 질병이나, 문제뿐만 아니라, 삶에서 만나게 되는 상황, 여러 가지 문제들이 우리 삶의 가시들이 됩니다. 그런데 그 가시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귀중한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가시를 통해 우리의 무력함을,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포기와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며, 우리의 절망의 순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의 순간”이 되는 줄 믿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통해 오히려 기뻐하고, 겸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상황적인 문제들, 약점, 나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하심을 체험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도들을 염려하는 사랑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 염려가 생겼습니다. 교회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거만한 모습 등 성도답지 못한 모습이 있을까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세상 죄로 인해 정결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염려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날개 아래에는 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품는 순간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또 사랑은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사랑은 인내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진심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염려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이 가득한 염려는 상대방을 변화시킵니다. 부모의 염려를 기억하고 있는 자녀들은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잘못된 길로 갔다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그 염려는 사랑에서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름만 성도고 실제의 삶은 타락해 있으면 어쩌나, 세상의 욕심을 쫓아가고 있으면 어쩌나 염려했습니다. 그는 이제 곧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염려를 전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어떤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요? 누군가 자신을 위해 염려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게 되면 슬퍼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삶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을 사랑으로 염려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풍요로워집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변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랑이 필요할 줄 믿습니다. 바울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염려한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진정한 변화와 풍요로움이 넘쳐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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