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문화와 만나다
한눈에 명화로 보는 신약성경 이야기(35)
2023년 7월 30일
가룟 유다의 죽음(마 27:3~5)
광림뉴스레터
▲ 가룟 유다의 후회_ 유대 지도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팔고 받은 은화 30세겔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그들은 가룟 유다를 경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애드워드 아미티지의 작품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3~5)
동이 틀 무렵, 모든 대제사장과 재판관들은 예수를 죽일 모의(謀議)를 마무리했다. 그들은 예수를 산헤드린 법정으로 끌고 갔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를 체포한 후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1차 재판을 한 그들은, 다시 산헤드린 법정에서 2차 재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사형(死刑)에 처해야 한다’는 결론은 1차 재판의 내용과 같았다. 그런데 산헤드린은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할 권리가 없었다. 당시 사형권은 로마의 총독에게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결박해서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 갔다.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는, 그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진 것을 알게 된 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사형이라니……, 너무 지나친 판결이 아닌가! 그를 죽여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그가 지난 3년간 섬기며 따라다닌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을 지녔으며, 선지자들 중에 선지자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긍휼을 베푼 위대한 스승이었다.
단지 가룟 유다는 예수가 그의 능력을 사용하여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왕국’을 이룰 것이라 기대했다. 이런 기대감은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물론 모든 유대인도 마찬가지였다.
가룟 유다는 산헤드린이 예수의 사형을 결정하고, 그 절차를 위해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졌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양심의 가책을 이길 수 없었던 그는 산헤드린으로 달려갔다. 몇몇 대제사장들이 남아 있었고, 유다는 예수를 팔고 그들에게 받은 은화 30세겔을 돌려주며 말했다. “내가 죄를 지었소. 내가 죄 없는 사람을 배반하였소.”
그들은 경멸에 찬 시선으로 유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네가 죄를 지었으면 네가 당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너의 문제다!”
그들의 말에 가룟 유다는 들고 있던 은화를 그들에게 던졌다. 그곳을 도망치듯 떠난 가룟 유다는 성 밖으로 나가서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한편 유다가 버린 은화를 두고 대제사장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살인의 대가로 받은 돈을 성전에 헌금으로 바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돈으로 성 밖,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비명횡사(非命橫死)한 나그네들의 묘지로 사용합시다.”
누군가의 제안에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로 그 밭은 ‘살인의 밭’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리하여 구약시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그들이 은화 서른 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값을 매긴 자의 몸값을 받아서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다”(마 27:9).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 산헤드린의 가룟 유다_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기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가룟 유다가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을 찾아갔으나, 그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장면이다.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작품